소실된 YMCA회관 골목길에 모인 회원들
 1923년 9월 1일 오전11시 58분, 관동지방 남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카나가와현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자 행방불명자가 10만인을 넘는 대혼란 사이, 평소부터 조선독립 운동의 고조에 겁먹고 있던 일본의 관헌 그리고 민중들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고있다」,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라고 하는 유언비어를 퍼트려갔습니다. 군대, 경찰뿐만이나라, 재향군인회 및 소방단, 청년단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민간인에 의한 자경단이 각지에서 다수의 조선인을 무차별로 학실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조선인 청년들은, 학우회, YMCA, 천도교 청년회를 중심으로한 「이재 조선동포 위문단」을 조직, 학살의 실태 조사등의 활동을 실시했습니다. 방해를 받은 조사는 대단히 곤란했지만, 학살된 총인원 약 6661명이라는 숫자는 실제의 희생자수에 가까운 귀중한 기록이라고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다음해 YMCA가 타단체와 공동으로 개최한 학살 동포 추도회는 그 후에도 길게 이어져, 오늘날에 있어서의 매년 9월 1일의 도쿄YMCA와의 합동기도회에 이르고 있습니다(도쿄YMCA에서는, 대지진의 다음해,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들이 발기인이 되어, 「조선인 및 중국인 학살 참회 기도회」가 행하여 졌습니다.